캄보디아는 13세기 쑤코타이가 생성되면서 헥헥대는 조짐을 보였고, 14세기 아유타야가 생기니 더더욱 안습해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강한 나라였던지라 공격당하면 반격도 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포로를 끌고 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러한 공방전은 캄보디아의 쇠퇴를 부채질했다. 전쟁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치수공사는 어이하누? 치수공사가 막기만 하면 끝도 아니고 만든다음에 꾸준한 관리를 해야하는데, 계속되는 공방전으로 정신이 없으니 이짓도 힘들고, 이렇게 수리공사를 안해 물이 고이니 아예 전염병까지 돈다. 뒤로 쓰러져서 코가 깨진 초 재수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타이족과의 전쟁중 들어온듯한 소승불교도 문제였다. 대승불교는 전륜성왕이니 미륵이니 하면서 신성화 시킬수 있었지만, 소승불교는 대승불교에 비해 그 잇점이 적었다. 물론 대승불교라고해도 너무 미륵에 헥헥대면 궁예처럼 죽는다. 태조왕건에서 폼잡고 죽는거 말고 사료에서처럼 수박하다가 맞아죽는 그 안습함. 뭐 이 부분은 왕권이 명확히 약화되었는가는 알기 힘드나, 소승불교로 바뀌면서 잇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맞았다. 같은 불교의 권위라해도 미륵보살이나 전륜성왕과 비교하면 좀 모질라지 아니한감?

 

이게 실제역사였다면 아흑;

 

수도의 위치도 문제였다. 그때까지 캄보디아의 수도였던 앙코르는 팽창에는 좋은 위치이긴 했지만, 그것은 즉 수비를 할 때는 역으로 공격을 더 받기 쉽다는 것을 의미했다. 캄보디아가 잘나갔을때는 별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문제는 타이족의 깽판으로 캄보디아는 역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몇차례 수도가 함락당했었던 모양이다. 뭐 동남아시아의 전쟁에서 수도점령은 보통 약탈로 끝나지만 타격은 타격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1431년에 발생했다. 1431년 아유타야의 군대는 앙코르를 함락한다. 캄보디아는 아직 결정적으로 약화되지는 않아서 수도를 재탈환 할 수는 있었지만 앙코르의 위치문제를 새삼 다시 깨닫고 수도를 현재의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 인근으로 옮긴다. 이로써 앙코르는 정글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이후 캄보디아의 기록은 잘 안나타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라고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외부의 기록자는 아유타야로 단체관광을 갔지 캄보디아로는 관광을 사절했던 모양이다. 깃발관광을 갈려면 안내자가 필요한데 아유타야는 관광산업의 진흥인지 상업의 진흥인지 무기도입인지 여하튼 그런 의미로 교류를 많이 했지만 캄보디아는 구태여 노력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꾸준히 약화는 된 모양이다. 16세기말까지 가면 사건이 또 하나 발생해서 캄보디아의 결정적인 안습화를 보여주니까 말이다. 이 안습적인 사건은 차라리 깨끗하게 멸망했으면 더 보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들게 한다.

 

 

캄보디아가 다시 눈에 띄기 시작한 16세기, 그래도 아유타야보다는 기록이 안습했다. 탐험가는 잊혀질랑말랑한 앙코르의 존재를 암시하고, 선교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안먹힌다고 투덜거리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아유타야와의 전쟁은 어이‰榮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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