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말이 어떤 말로 해석되고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말을 본래의 어떤 의도나 사실에 대하여

이것을 해셕하고 이해하는데 본래의 사실보다 더 확대 해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꿈을 꾸긴 꾸었는데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야 그 꿈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의견이 분분 할수도 있고 해석해주는 사람이

꿈을 꾼 사람에 대하여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무슨 신비의 비서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전체를 계시록이나 묵시록으로 보아서

거기에 글자 이면의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 처럼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 글자의 이면에 어떤 하나님의 신비가 담겨 있지 않나 하고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입니다.

(항상 꿈보다 해몽이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이렇게 꿈을 해몽하듯이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  성경의 기록 목적이 가장 중요하고 (주제)

둘째 :  언어적, 문화적,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그 주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 를 살펴봄으로

    써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나아가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더욱 깊이 들어가는 것은

  저자의 의도를 무색케 하고 자신을 생각을 가감함으로

 성경말씀의 본 의도를 확대해석하는 것이 될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의 성경말씀에 대하여

 

본문: 또한 가지 얼마가 꺾어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롬11:17-18)

 

다음과 같은 주검보님의 해석은

로마서 11장 전체의 앞뒤 문맥을 살펴보아

사도 바울의 서신목적에 가장 적절한 해석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로마서 11:11-24을 보면 바울이 이방 사람의 구원에 관하여 말하면서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참감람나무가 된다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찍이 선택하셨던 이스라엘은 참감람나무이고, 선택에서 제외된

이방사람은 돌감람나무인데,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이 붙어 참감람나무가 될때

그 접이 붙은 돌감람나무 가지가 본래부터 참감람나무였던 가지들을 보고

우쭐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 되었다고 교만한 마음을 품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본래의 참감람나무 가지를 잘라내시고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접붙이신 그 가지라 하더라도 그 교만한 돌나무 가지를

가차없이 다시 잘라내 버리실수도 있다고 바울은 경고한다

 

우리가 성경의 이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이상도 아니고 이 이하도 아닐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쓰리엘님의 말씀은

 

자연의 접붙임은 가지의 종류에 의해 과일이 바뀌지만

성경의 접붙임은 과일의 겉 모양은 그대로인데 진액만 원 나무로 부터 받는 원리입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으로 있을 때는 겉 모양은 돌감람나무와 같습니다.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진액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과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자연의 접붙이는 이론으로 같이 보면 하나님의 뜻을 곡해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접붙임은 가지가 과일의 종류를 결정하지만 성경의 접붙임은 뿌리가 가지를 보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벙 생각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사도 바울의 말씀과 어떤 관계가 있나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주님의 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원리에  의해 생각해보면

쓰리엘님의 깨달음은 참으로 귀한 깨달음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주님의 가지에서 원 가지였던 유대인이 잘려나가고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접붙임을 당했다고 해서 자긍하지말라(자만하지 말라)는 말씀과  쓰리엘님이 깨달으셨다는 그 말씀은 전혀 같이 놓고 생각할수 없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 쓰리엘님이 깨달은 원리는 본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깨달음이며

오히려 주님은 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어야 할것 같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저의 말이 다소 귀에 거슬릴수는 있겠지만

저는 이문제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결례를 무릅쓰고 답글을 올립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저자신을 포함하여 너무나 많은 분들이 꿈보다 해몽에 가까운 성경해석을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저자신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교만이 많았습니다.

"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은혜롭게도! 감사하게도 주님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셨다는?"

얼마나 많이 "꿈보다 해몽에 가까운 이해를 가지고"

큰 것을 깨달았다고 속으로 자부 했는지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그래 이제는 성경을 묵시나 계시적인 측면에서 보려는 것을 되도록 삼가고 있습니다.

그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지

무언가 신비스러운 것을 찾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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